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개념 정리
26년 10월 28일 검사 완료
요약 노트
1과목 · 한국사50문항
1-1. 선사 시대·고조선·여러 나라
★★★☆☆ 8% (추정)
개요
이 단원은 글로 된 기록이 없던 선사 시대에서 시작해 우리 역사의 첫 나라 고조선과 그 뒤에 생긴 여러 나라까지 살펴봅니다. 사람들이 어떤 도구를 쓰고 어디에서 살았는지가 시대마다 달라졌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유물 이름을 보면 시대를, 풍습을 보면 나라를 떠올릴 수 있도록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돌을 깨뜨려 만든 주먹도끼 같은 뗀석기를 들고 사냥과 열매 채집을 하며 동굴이나 막집에서 옮겨 다녔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서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쓰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강가에 움집을 짓고 한곳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비파형 동검과 반달 돌칼, 민무늬 토기가 쓰였고, 힘 있는 지배자가 나타나 커다란 고인돌을 무덤으로 남겼습니다.
고조선은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하는 우리 역사의 첫 나라입니다. 범금 8조라는 법으로 사회 질서를 지켰는데, 지금은 그 가운데 세 조항만 전합니다. 고조선과 같은 시기부터 그 뒤에 걸쳐 만주와 한반도에는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이 자리 잡았고, 부여·고구려·동예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 행사를 연 나라가 있었고, 옥저·고구려처럼 독특한 혼인 풍습을 가진 나라도 있었습니다.
핵심 정리
- 구석기 시대
- —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주먹도끼·찍개 등)를 쓰던 시대입니다.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하고, 동굴이나 막집에 살며 이곳저곳 옮겨 다녔습니다.
- 신석기 시대
- —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쓴 시대입니다. 농사와 짐승 기르기를 시작해 움집을 짓고 정착했으며, 가락바퀴로 실을 뽑아 옷을 지었습니다.
- 청동기 시대
- — 청동으로 만든 비파형 동검과 거울, 곡식을 거두는 반달 돌칼, 민무늬 토기를 쓰던 시대입니다. 빈부 차이와 계급이 생겨 지배자의 무덤인 고인돌이 만들어졌습니다.
- 고조선
- —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하는 우리 역사의 첫 나라입니다. 범금 8조로 질서를 유지했으며,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남을 다치게 하면 곡식으로 갚게 했습니다.
- 여러 나라의 제천 행사
- —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함께 먹고 마시고 노래하던 나라의 큰 행사입니다. 부여는 영고, 고구려는 동맹, 동예는 무천을 열었습니다.
- 옥저와 동예
- — 옥저에는 어린 여자아이를 신랑 집에서 키운 뒤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동예에는 다른 마을의 경계를 침범하면 소나 말로 갚게 하는 책화가 있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뗀석기(주먹도끼)는 구석기, 간석기·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고인돌·비파형 동검은 청동기입니다.
- 농사와 정착 생활은 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었습니다.
- 제천 행사 짝(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은 서로 헷갈리지 않도록 짝지어 외워 두세요.
- 삼한에는 제사장인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한 곳 소도가 있었습니다.
1-2. 삼국·가야·남북국
★★★★★ 18% (추정)
개요
이 단원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겨루며 성장한 과정과, 그 사이에 있던 가야를 살펴봅니다. 이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있던 남북국 시대까지 다룹니다. 이 단원은 나라를 크게 키운 왕의 업적과 대표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가장 힘이 셌고,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 때 영토를 크게 넓혔습니다. 장수왕은 도읍을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신라는 법흥왕 때 불교를 공인하고 율령을 반포했으며, 진흥왕 때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키웠습니다. 가야는 철이 풍부해 철기 문화가 발달했으나 결국 신라에 합쳐졌습니다.
신라는 당과 손을 잡고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그 뒤 땅을 차지하려는 당과 싸워 이겨 676년 삼국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통일 뒤 신문왕은 왕권을 강하게 다졌고, 불국사와 석굴암 같은 뛰어난 불교 문화유산이 만들어졌습니다.
698년에는 고구려 장수 출신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습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밝혔고, 전성기에는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으로 불렸습니다. 남쪽의 통일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있던 이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핵심 정리
- 광개토 대왕
- — 고구려의 왕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쪽의 넓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신라에 쳐들어온 왜를 물리쳐 주기도 했으며, 그의 업적은 아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 대왕릉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 장수왕
- — 광개토 대왕의 아들로, 427년 도읍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기고 남쪽으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해 한강 유역을 차지했습니다.
- 근초고왕
- — 4세기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왕입니다. 마한의 남은 세력을 정복하고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했으며, 바다 건너 중국·일본과 활발히 교류했습니다.
- 진흥왕
- —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힌 왕입니다.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정복했으며, 새로 얻은 땅에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개편했습니다.
- 가야
- — 낙동강 하류에서 여러 작은 나라가 연맹을 이룬 나라입니다. 질 좋은 철이 많이 나서 덩이쇠를 화폐처럼 쓰고 주변 나라에 수출했습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중심이었습니다.
- 삼국 통일
- — 신라가 당과 연합해 백제(660)와 고구려(668)를 무너뜨리고, 당을 몰아내는 전쟁에서 이겨 676년 통일을 이룬 일입니다. 김춘추(태종 무열왕)와 김유신, 문무왕이 중심 인물입니다.
- 발해
- —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밝혔고, 전성기에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광개토 대왕(영토 확장)과 장수왕(평양 천도)의 업적을 바꿔 놓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신라 법흥왕은 불교 공인·율령 반포, 진흥왕은 한강 유역 차지·화랑도 개편입니다.
- 불국사와 석굴암은 통일 신라의 대표 불교 문화유산입니다.
- 백제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입니다.
1-3. 고려
★★★★★ 1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왕건이 세운 고려가 약 500년 동안 어떻게 나라를 지키고 다스렸는지 살펴봅니다. 건국과 통일, 나라 기틀 다지기, 북쪽 민족과의 전쟁, 무신 정권과 몽골의 간섭, 공민왕의 개혁 순서로 흐름을 잡으면 쉽습니다. 왕의 업적과 대표 인물, 문화유산을 짝지어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왕건은 918년 고려를 세우고 936년 후백제를 무너뜨려 후삼국을 통일했습니다. 광종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풀어 주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하고 과거제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를 바탕으로 나라를 정비했습니다.
거란이 쳐들어오자 서희는 적장과 담판을 지어 강동 6주를 얻었고, 강감찬은 귀주 대첩에서 거란군을 크게 물리쳤습니다. 12세기 후반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잡았고, 이후 몽골이 침입하자 고려는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오랫동안 맞서 싸웠습니다. 몽골과 강화한 뒤 삼별초는 끝까지 항쟁했습니다.
원나라의 간섭을 받던 고려 말, 공민왕은 원의 세력을 몰아내고 빼앗긴 땅을 되찾는 개혁을 펼쳤습니다. 고려는 문화도 뛰어나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기를 바라며 팔만대장경을 새겼고, 금속 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을 찍었습니다. 맑은 푸른빛의 고려청자, 특히 상감 청자도 대표 유산입니다.
핵심 정리
- 왕건(태조)
- — 918년 고려를 세운 왕입니다. 936년 후삼국을 통일했고, 지방 호족과 혼인 관계를 맺어 세력을 끌어안았으며,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려 했습니다.
- 광종
- — 고려의 왕권을 강하게 만든 왕입니다.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되돌리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하고, 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과거제를 처음 시행했습니다.
- 서희와 강감찬
- — 거란의 침입을 막은 인물입니다. 서희는 1차 침입 때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강감찬은 3차 침입 때 귀주 대첩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 삼별초
- — 무신 정권 때 만든 군사 조직입니다. 고려 정부가 몽골과 강화하자 이에 반대해 강화도·진도·제주도로 옮겨 가며 끝까지 몽골에 맞서 싸웠습니다.
- 공민왕
- — 원나라가 약해진 틈을 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려 한 고려 말의 왕입니다.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으며, 신돈을 등용해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 팔만대장경
- — 몽골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를 바라며 새긴 불교 경전 목판입니다. 지금은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 직지심체요절
- — 고려 말에 금속 활자로 찍은 책으로, 현재 남아 있는 금속 활자 인쇄본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습니다. 지금은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광종(노비안검법·과거제)과 성종(시무 28조)의 업적을 서로 바꿔 놓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거란은 서희·강감찬, 몽골은 삼별초·강화도 천도와 짝지어 외우세요.
- 팔만대장경은 목판, 직지심체요절은 금속 활자 인쇄본입니다.
- 상감 청자는 그릇 표면에 무늬를 파고 다른 색 흙을 메워 넣은 고려만의 청자입니다.
1-4. 조선 전기
★★★★☆ 14% (추정)
개요
이 단원은 이성계가 조선을 세운 때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기까지를 다룹니다. 나라의 틀을 세운 왕들, 훈민정음과 과학 기술, 새로운 정치 세력인 사림, 그리고 두 차례의 큰 전쟁이 핵심입니다. 특히 세종의 업적은 종류가 많으니 꼼꼼히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권력을 잡은 뒤 1392년 조선을 세우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했습니다. 태종은 왕권을 강하게 하고 백성을 파악하려고 호패법을 실시했습니다. 세종은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키우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며, 측우기와 앙부일구 같은 과학 기구를 만들고 4군 6진을 개척했습니다. 성종 때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되었습니다.
1592년 일본이 쳐들어온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 등에서 일본 수군을 크게 이겼고, 곳곳에서 의병이 일어나 싸웠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실리를 따지는 중립 외교를 폈습니다. 1636년 청이 쳐들어온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지만 결국 항복했습니다.
핵심 정리
- 조선 건국
- —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고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와 힘을 모아 1392년 세운 나라가 조선입니다.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고 유교를 나라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 태종
- — 조선의 왕권을 튼튼히 한 왕입니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신분증인 호패를 차게 하는 호패법을 실시하고, 억울한 일을 알리는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 세종
- — 집현전을 두어 학자를 키우고 백성을 위한 글자인 훈민정음을 만든 왕입니다. 측우기·앙부일구·자격루 같은 과학 기구를 만들고, 농사직설을 펴냈으며, 4군 6진을 개척해 국경을 넓혔습니다.
- 경국대전
- — 세조 때 만들기 시작해 성종 때 완성·반포한 조선의 기본 법전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규칙을 담았습니다.
- 임진왜란
- — 1592년 일본이 조선에 쳐들어온 전쟁입니다. 이순신의 수군이 한산도 대첩 등에서 크게 이기고, 김시민의 진주 대첩, 권율의 행주 대첩, 곳곳의 의병 활동으로 나라를 지켰습니다.
- 병자호란
- — 1636년 청이 조선에 쳐들어온 전쟁입니다.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해 버텼으나 결국 삼전도에서 청에 항복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세종의 업적(훈민정음, 측우기, 4군 6진)과 다른 왕의 업적을 섞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호패법은 태종, 경국대전 완성은 성종입니다.
- 임진왜란은 일본, 병자호란은 청이 쳐들어온 전쟁입니다.
-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폈습니다.
1-5. 조선 후기
★★★★★ 1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두 차례의 전쟁 뒤 조선이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그리고 19세기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다룹니다. 세금 제도의 개혁, 영조와 정조의 정치, 상업과 서민 문화의 발달, 실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순서로 흐름을 잡으면 좋습니다. 이 단원은 영조·정조의 업적과 대동법·균역법을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살림을 바로잡기 위해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쌀이나 옷감, 돈으로 내게 한 대동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영조는 붕당끼리의 다툼을 줄이려고 탕평책을 펴고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웠으며, 군포 부담을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인재를 키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으며, 신해통공으로 일반 상인의 자유로운 장사를 넓혔습니다.
이 시기에는 장시가 늘고 상평통보가 널리 쓰이며 상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정약용·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은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강조했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판소리와 탈춤, 한글 소설이 인기를 끌었고, 김홍도와 신윤복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19세기에는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도 정치가 이어지면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졌습니다. 이에 1811년 홍경래의 난,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기 최제우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늘님을 모신다는 생각(시천주)을 담은 동학을 만들었습니다.
핵심 정리
- 대동법
- — 집집마다 지역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토지 면적에 따라 쌀·옷감·돈으로 내게 한 제도입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 영조
- — 붕당 사이의 다툼을 줄이려고 탕평책을 펴고 탕평비를 세운 왕입니다. 백성이 내던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하고, 청계천을 정비했습니다.
- 정조
- — 영조의 손자로, 규장각을 두어 젊은 인재를 키우고 수원 화성을 쌓은 왕입니다. 신해통공으로 일반 상인도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 실학
- — 조선 후기에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강조한 흐름입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쓰고 거중기를 만들었고, 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습니다.
- 서민 문화
- — 조선 후기에 서민이 즐긴 문화입니다. 판소리와 탈춤이 유행하고, 홍길동전·춘향전 같은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혔으며, 김홍도와 신윤복이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 — 19세기에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한 정치가 세도 정치입니다. 부정부패로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자 홍경래의 난(1811)과 진주 농민 봉기(1862)가 일어났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균역법은 영조, 대동법은 광해군 때 처음 실시입니다. 두 제도를 바꿔 놓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규장각과 수원 화성은 정조, 탕평비는 영조입니다.
- 판소리·탈춤·한글 소설·풍속화는 조선 후기 서민 문화입니다.
- 동학은 최제우가 만들었고,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는 생각(시천주, 뒤에 인내천으로 정리)을 담았습니다.
1-6. 개항기·대한제국
★★★★★ 14% (추정)
개요
이 단원은 조선이 문을 열고 근대 세계와 만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부터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를 다룹니다. 짧은 기간에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므로 순서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흥선 대원군의 정책, 개항, 개화와 저항, 대한제국, 국권 수호 운동 순서로 정리하면 쉽습니다.
흥선 대원군은 왕권을 강하게 하려고 경복궁을 다시 짓고 서원을 정리했습니다. 프랑스(병인양요)와 미국(신미양요)의 침입을 물리친 뒤 전국에 척화비를 세워 서양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1876년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으면서 문을 열게 되었는데, 이 조약은 일본에 유리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개항 뒤 1882년 구식 군인들이 임오군란을 일으켰고,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1894년에는 전봉준이 이끈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났고, 같은 해 정부는 갑오개혁을 추진해 신분제를 없앴습니다. 1896년 서재필은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 협회를 세웠습니다.
1897년 고종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일본이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자 의병이 일어나고, 국채 보상 운동 같은 애국 계몽 운동이 펼쳐졌습니다. 1909년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지만, 1910년 대한제국은 결국 일본에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핵심 정리
- 흥선 대원군
- — 고종의 아버지로, 어린 고종을 대신해 정치를 이끌었습니다. 경복궁을 다시 짓고 서원을 정리했으며, 병인양요·신미양요 뒤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을 폈습니다.
- 강화도 조약
- — 1876년 조선과 일본이 맺은 조약으로, 부산 등 항구를 열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유리한 내용이 담긴 불평등 조약입니다.
- 갑신정변
- — 1884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일으킨 정변입니다. 청의 군대가 개입해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 동학 농민 운동
- — 1894년 전봉준을 중심으로 동학 농민군이 탐관오리 처벌과 외세 배척을 내세워 일어난 운동입니다.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두었으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 독립 협회
- — 1896년 서재필 등이 세운 단체입니다.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문을 세웠으며, 만민 공동회를 열어 백성의 뜻을 모았습니다.
- 국채 보상 운동
- — 1907년 일본에 진 나랏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자며 대구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자들은 반지와 비녀를 내놓았습니다.
- 안중근
- —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독립운동가입니다. 감옥에서 동양 평화론을 썼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강화도 조약(1876) → 임오군란(1882) → 갑신정변(1884) → 동학 농민 운동·갑오개혁(1894) 순서를 꼭 외우세요.
- 병인양요는 프랑스, 신미양요는 미국이 쳐들어온 사건입니다.
- 을사늑약(1905)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 대한제국 선포는 1897년, 국권 피탈은 1910년입니다.
1-7. 일제 강점기
★★★★☆ 8% (추정)
개요
이 단원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긴 뒤 1945년 광복까지의 시기를 다룹니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그리고 우리 민족이 나라 안팎에서 어떻게 독립을 위해 싸웠는지가 중심입니다. 독립운동가와 그가 한 일을 짝지어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1910년대 일제는 헌병 경찰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다스렸고, 토지 조사 사업으로 많은 땅을 빼앗았습니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가 독립 선언서를 발표하고 전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3·1 운동입니다. 3·1 운동을 계기로 같은 해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1920년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에서,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 등은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겼습니다. 김구가 만든 한인 애국단의 윤봉길은 1932년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1940년 임시 정부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들어 광복을 준비했습니다. 나라 안에서는 1926년 6·10 만세 운동과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도 일어났습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일제는 우리말 사용을 막고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는 등 민족 말살 정책을 폈습니다. 이보다 앞서 조선어 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준비했으며, 1934년 무렵부터 정인보 같은 학자들은 조선학 운동으로 우리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 애썼습니다. 일제는 1942년 조선어 학회 회원들을 잡아 가두어 학회를 해산시켰습니다.
핵심 정리
- 3·1 운동
- —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의 독립 선언을 시작으로 전국과 해외로 퍼진 만세 운동입니다. 일제가 통치 방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으로 이어졌습니다.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 1919년 상하이에 세워진 우리 민족의 정부입니다. 독립운동을 이끌었고,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만들었습니다.
-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 — 1920년 만주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크게 이긴 전투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홍범도의 대한 독립군,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와 홍범도 부대 등이 중심이었습니다.
- 한인 애국단
- — 김구가 상하이에서 만든 단체입니다. 이봉창은 일본 국왕에게 폭탄을 던졌고, 윤봉길은 1932년 훙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성과 고관들을 죽이거나 크게 다치게 했습니다.
- 조선어 학회
- —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단체입니다.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 큰사전을 펴내려 했으나, 일제가 회원들을 잡아들였습니다.
★ 시험 포인트
- 3·1 운동은 1919년, 임시 정부도 같은 해 상하이에서 세워졌습니다.
- 봉오동(홍범도)과 청산리(김좌진)를 바꿔 놓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한국광복군은 1940년 충칭에서 임시 정부가 만든 군대입니다.
- 광주 학생 항일 운동(1929)은 3·1 운동 이후 가장 큰 민족 운동으로 꼽힙니다.
1-8. 현대
★★★☆☆ 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1945년 광복부터 오늘날까지를 다룹니다. 정부 수립과 전쟁,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노력, 경제 성장, 남북 관계의 변화가 큰 줄기입니다. 민주화 운동은 일어난 순서대로 정리해 두면 좋습니다.
광복 뒤 1948년 5·10 총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만들었고, 같은 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일어났고, 인천 상륙 작전 등을 거쳐 1953년 정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맞서 4·19 혁명이 일어나 이승만 정부가 물러났습니다. 1980년 광주에서는 신군부에 맞선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1987년 6월 민주 항쟁으로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제 면에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으로 빠르게 성장했고, 1997년 외환 위기 때는 국민들이 금 모으기 운동에 나섰습니다. 남북 관계에서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이 처음 발표되었고, 2000년 첫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려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나왔습니다.
핵심 정리
- 5·10 총선거
- —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적 보통 선거입니다. 이 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되어 헌법을 만들었습니다.
- 6·25 전쟁
-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입니다. 국군이 낙동강까지 밀렸다가 인천 상륙 작전으로 반격했고, 중국군 개입 뒤 1953년 정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 4·19 혁명
- —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반대해 학생과 시민이 일어난 민주 혁명입니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습니다.
- 5·18 민주화 운동
- — 1980년 5월 광주에서 신군부의 권력 장악과 계엄령에 맞서 시민들이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올랐습니다.
- 6월 민주 항쟁
- —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전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그 결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헌법으로 바뀌었습니다.
- 남북 관계의 변화
- —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에서 처음으로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의 통일 원칙에 합의했습니다. 2000년에는 첫 남북 정상 회담이 열려 6·15 남북 공동 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민주화 운동 순서: 4·19 혁명(1960) → 5·18 민주화 운동(1980) → 6월 민주 항쟁(1987).
- 제헌 국회는 5·10 총선거로 구성되었습니다.
- 금 모으기 운동은 1997년 외환 위기를 이겨 내려는 국민 운동입니다.
- 6·25 전쟁의 정전 협정은 1953년에 맺어졌습니다.
객관식 50문항 · 1과목 50문항 · 70분
합격 기준: 평균 60점 이상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202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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