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기본 조선 후기 개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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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 단원은 두 차례의 전쟁 뒤 조선이 어떻게 다시 일어섰는지, 그리고 19세기에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를 다룹니다. 세금 제도의 개혁, 영조와 정조의 정치, 상업과 서민 문화의 발달, 실학,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순서로 흐름을 잡으면 좋습니다. 이 단원은 영조·정조의 업적과 대동법·균역법을 중심으로 공부합니다.
전쟁으로 무너진 살림을 바로잡기 위해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쌀이나 옷감, 돈으로 내게 한 대동법이 실시되었습니다. 영조는 붕당끼리의 다툼을 줄이려고 탕평책을 펴고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웠으며, 군포 부담을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했습니다.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인재를 키우고 수원 화성을 쌓았으며, 신해통공으로 일반 상인의 자유로운 장사를 넓혔습니다.
이 시기에는 장시가 늘고 상평통보가 널리 쓰이며 상업이 활발해졌습니다. 정약용·박지원 같은 실학자들은 백성의 삶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강조했습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판소리와 탈춤, 한글 소설이 인기를 끌었고, 김홍도와 신윤복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19세기에는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하는 세도 정치가 이어지면서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해졌습니다. 이에 1811년 홍경래의 난,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같은 시기 최제우는 누구나 마음속에 하늘님을 모신다는 생각(시천주)을 담은 동학을 만들었습니다.
핵심 개념
대동법
집집마다 지역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토지 면적에 따라 쌀·옷감·돈으로 내게 한 제도입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외우는 요령특산물 대신 쌀 = 대동법입니다.
영조
붕당 사이의 다툼을 줄이려고 탕평책을 펴고 탕평비를 세운 왕입니다. 백성이 내던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하고, 청계천을 정비했습니다.
외우는 요령탕평비·균역법·청계천은 영조입니다.
정조
영조의 손자로, 규장각을 두어 젊은 인재를 키우고 수원 화성을 쌓은 왕입니다. 신해통공으로 일반 상인도 자유롭게 장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외우는 요령규장각·수원 화성은 정조입니다.
실학
조선 후기에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강조한 흐름입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쓰고 거중기를 만들었고, 박지원은 청에 다녀와 열하일기를 썼습니다.
외우는 요령거중기·목민심서 = 정약용, 열하일기 = 박지원입니다.
서민 문화
조선 후기에 서민이 즐긴 문화입니다. 판소리와 탈춤이 유행하고, 홍길동전·춘향전 같은 한글 소설이 널리 읽혔으며, 김홍도와 신윤복이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외우는 요령씨름·서당 그림은 김홍도의 풍속화입니다.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19세기에 몇몇 가문이 권력을 독차지한 정치가 세도 정치입니다. 부정부패로 백성의 삶이 어려워지자 홍경래의 난(1811)과 진주 농민 봉기(1862)가 일어났습니다.
외우는 요령평안도 차별에 맞선 것이 홍경래의 난입니다.
자주 나오는 포인트
- 균역법은 영조, 대동법은 광해군 때 처음 실시입니다. 두 제도를 바꿔 놓은 선지에 주의하세요.
- 규장각과 수원 화성은 정조, 탕평비는 영조입니다.
- 판소리·탈춤·한글 소설·풍속화는 조선 후기 서민 문화입니다.
- 동학은 최제우가 만들었고, 사람을 하늘처럼 귀하게 여기는 생각(시천주, 뒤에 인내천으로 정리)을 담았습니다.
헷갈리는 것 비교: 영조와 정조
| 구분 | 영조 | 정조 |
|---|---|---|
| 정치 | 탕평책, 탕평비 건립 | 탕평책 계승, 규장각 설치 |
| 백성을 위한 정책 | 균역법(군포 1필), 청계천 정비 | 신해통공(자유로운 상업) |
| 대표 건축 | — | 수원 화성 |
대표 문제 3개
검수를 마친 예상문제 가운데 이 단원의 대표 문제입니다.
문제 1. 밑줄 그은 '이 왕'의 업적으로 옳은 것은? 이 왕은 붕당 사이의 다툼을 줄이고자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웠습니다. 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청계천의 바닥을 파내는 공사를 하였습니다.
- ①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 ②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 ③ 수원 화성을 쌓았다.
- ④ 군포를 1년에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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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④ 군포를 1년에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핵심: 영조 = 탕평비·청계천 정비·균역법(군포 1필)
탕평비를 세우고 청계천을 정비한 왕은 영조입니다. 영조는 백성이 군대에 가는 대신 내던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이는 균역법을 실시해 백성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틀린 선지
-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규장각은 정조가 설치했습니다.
-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경국대전은 조선 전기 성종 때 완성되었습니다.
- 수원 화성을 쌓았다.: 수원 화성은 정조 때 쌓았습니다.
문제 2. 밑줄 그은 '이 왕'은? 이 왕은 창덕궁에 규장각을 두어 젊은 학자들을 길렀습니다. 또 아버지 사도 세자의 무덤을 옮긴 수원에 거중기 등을 이용하여 화성을 쌓았습니다.
- ① 정조
- ② 영조
- ③ 순조
- ④ 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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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 정조
핵심: 규장각·수원 화성 = 정조
규장각을 두고 수원 화성을 쌓은 왕은 정조입니다.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 갔고, 신해통공으로 상업 활동을 넓혔습니다.
틀린 선지
- 영조: 영조는 정조의 할아버지로, 탕평비를 세우고 균역법을 실시했습니다.
- 순조: 순조는 정조의 뒤를 이은 왕으로, 이때부터 세도 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 숙종: 숙종은 환국이 자주 일어났던 때의 왕입니다.
문제 3. 다음 설명에 해당하는 제도는? 집집마다 그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던 방식을 바꾸어, 가진 땅의 넓이에 따라 쌀이나 옷감, 돈으로 내게 하였습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되었습니다.
- ① 대동법
- ② 영정법
- ③ 호패법
- ④ 균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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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① 대동법
핵심: 특산물 대신 쌀·옷감·돈 = 대동법(광해군, 경기도)
특산물(공납) 대신 쌀·옷감·돈으로 내게 한 제도는 대동법입니다.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내게 되어 땅이 적거나 없는 농민의 부담이 줄었습니다.
틀린 선지
- 영정법: 영정법은 토지세(전세)를 풍년·흉년에 관계없이 정해진 양으로 거둔 제도입니다.
- 호패법: 호패법은 태종 때 16세 이상 남자에게 호패를 차게 한 제도입니다.
- 균역법: 균역법은 영조 때 군포를 1필로 줄인 제도입니다.
AI 작성 · 검수 완료 · AI가 새로 쓴 글 가운데, 작성과 분리된 AI 검증(다시 읽고 사실·수치 확인)을 통과한 단원만 싣습니다. 틀린 곳을 발견하면 알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