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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개념 정리

AI 작성 · 검수 완료

AI가 새로 쓴 글 가운데, 작성과 분리된 AI 검증(다시 읽고 사실·수치 확인)을 통과한 단원만 싣습니다. 틀린 곳을 발견하면 알려 주세요.

객관식 50문항 · 1과목 50문항 · 80분

합격 기준: 평균 60점 이상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 2026년 기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5문제 풀기 →

요약 노트

1과목 · 한국사50문항

1-1. 선사 시대·고조선·여러 나라

★★★☆☆ 8% (추정)

개요

이 단원은 우리 역사의 맨 앞부분입니다. 돌을 깨서 쓰던 구석기 시대부터 돌을 갈아 쓰던 신석기 시대, 금속을 쓰기 시작한 청동기·철기 시대를 지나 첫 나라인 고조선과 그 뒤의 여러 나라까지 살펴봅니다. 시험에서는 유물을 보고 시대를 맞히거나, 풍습을 보고 어느 나라인지 고르는 문제가 많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주먹도끼 같은 뗀석기를 쓰며 먹을 것을 찾아 옮겨 다녔습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쓰고, 농사를 시작하면서 움집을 짓고 한곳에 머물러 살았습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비파형 동검과 민무늬 토기, 고인돌이 나타나고 지배하는 사람과 지배받는 사람이 갈라졌습니다.

고조선은 범금 8조로 질서를 지켰고, 위만이 왕이 된 뒤 철기 문화를 받아들여 힘을 키웠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공격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뒤 부여·고구려·옥저·동예·삼한이 저마다의 풍습을 지니고 자리 잡았는데, 제천 행사와 혼인 풍습이 단골 출제 내용입니다.

핵심 정리

구석기 시대
—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주먹도끼·찍개 등)를 쓰고,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하며 동굴이나 막집에서 옮겨 다니며 살던 시대입니다.
신석기 시대
—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빗살무늬 토기를 쓴 시대입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해 움집을 짓고 정착했으며,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옷을 지어 입었습니다.
청동기 시대
— 비파형 동검과 민무늬 토기, 반달 돌칼을 쓰던 시대입니다. 농사로 남는 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나뉘었고, 지배층의 무덤인 고인돌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조선
— 우리 역사의 첫 나라로 단군왕검이 세웠다고 전합니다. 범금 8조(지금은 3개 조항만 전함)로 질서를 지켰고, 위만이 왕이 된 뒤 철기를 받아들여 성장했으나 기원전 108년 한나라에 멸망했습니다.
부여
—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가 사출도를 나누어 다스린 나라입니다.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고, 도둑질하면 12배로 갚게 하는 1책 12법이 있었습니다.
옥저와 동예
— 옥저에는 여자아이를 신랑 집에서 키우다 혼인시키는 민며느리제와 가족 공동 무덤이 있었습니다. 동예는 10월에 무천을 열었고, 다른 부족 땅을 침범하면 노비·소·말로 갚는 책화가 있었습니다.
삼한
— 한반도 남쪽의 마한·진한·변한을 말합니다. 정치 지배자와 따로 제사를 맡은 천군이 있었고,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에는 죄인이 들어가도 잡지 못했습니다. 변한은 철이 많이 나서 이웃에 수출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고인돌·비파형 동검이 나오면 청동기, 빗살무늬 토기·가락바퀴가 나오면 신석기입니다.
  • 제천 행사 짝(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을 바꿔 놓은 선지가 자주 나옵니다.
  • 고구려에는 신랑이 신부 집 뒤에 지은 서옥에서 지내는 서옥제가 있었습니다. 옥저의 민며느리제와 헷갈리지 마세요.
  • 고조선 멸망은 기원전 108년, 한나라의 공격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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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삼국·가야·남북국

★★★★★ 18% (추정)

개요

이 단원은 고구려·백제·신라와 가야가 서로 겨루며 자라난 과정, 신라의 삼국 통일, 그리고 통일 신라와 발해가 함께 있던 남북국 시대를 다룹니다. 시험 비중이 가장 큰 단원이라 왕의 업적과 사건의 순서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세 나라는 차례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4세기에는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해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켰고, 5세기에는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백제 한성을 빼앗았습니다. 6세기에는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정복해 순수비를 세웠습니다.

신라는 당과 손잡고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이후 당이 한반도를 차지하려 하자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이겨 676년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신문왕은 관료전을 주고 녹읍을 없애 왕권을 강하게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698년 대조영이 발해를 세웠습니다. 무왕은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했고, 문왕은 3성 6부를 갖추었으며, 선왕 때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해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핵심 정리

고구려 소수림왕·광개토 대왕·장수왕
— 소수림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태학을 세우며 율령을 반포했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영락이라는 연호를 쓰고 신라에 쳐들어온 왜를 물리쳤습니다. 장수왕은 427년 평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475년 백제 한성을 함락했습니다.
백제 근초고왕·무령왕·성왕
— 근초고왕은 마한을 정복하고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켰습니다. 무령왕은 지방에 22담로를 두고 왕족을 보냈습니다.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로 바꾸었으며,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신라 지증왕·법흥왕·진흥왕
— 지증왕은 나라 이름을 신라로 정하고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을 정복했습니다. 법흥왕은 율령을 반포하고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공인했으며 금관가야를 병합했습니다. 진흥왕은 화랑도를 국가 조직으로 바꾸고 한강 유역을 차지했으며 대가야를 정복했습니다.
가야 연맹
— 낙동강 하류에 있던 작은 나라들의 연맹입니다. 앞 시기에는 김해의 금관가야가, 뒤 시기에는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이었습니다. 철이 풍부해 덩이쇠를 화폐처럼 썼고, 금관가야는 법흥왕, 대가야는 진흥왕에게 병합되었습니다.
삼국 통일 과정
— 신라는 당과 연합해 660년 백제,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 뒤 당이 옛 땅을 차지하려 하자 나당 전쟁을 벌여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이기고 676년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신문왕의 개혁
— 통일 신라 신문왕은 김흠돌의 난을 누르고 귀족 세력을 약하게 했습니다. 관리에게 관료전을 주고 녹읍을 없앴으며, 국학을 세우고 지방을 9주 5소경으로 정비했습니다.
발해
— 698년 고구려 출신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세운 나라입니다. 무왕은 장문휴를 보내 당의 산둥 지방을 공격했고, 문왕은 3성 6부를 갖추었으며, 선왕 때 '해동성국'이라 불렸습니다. 926년 거란에게 멸망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근초고왕(4세기) → 장수왕(5세기) → 진흥왕(6세기)의 전성기 순서를 묻는 문제가 단골입니다.
  • 불교 공인(법흥왕)과 화랑도 개편(진흥왕)을 바꿔 놓은 선지를 조심하세요.
  •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했고, 고국원왕은 근초고왕의 평양성 공격 때 전사했습니다.
  • 발해 문왕과 선왕의 업적을 섞어 내는 문제가 자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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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고려

★★★★★ 1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918년 왕건이 세운 고려가 체제를 갖추고, 거란·여진·몽골과 맞서며, 무신 정권과 원 간섭기를 거쳐 공민왕의 개혁에 이르는 과정을 다룹니다. 고려 문화재와 역사책도 함께 나옵니다.

태조 왕건은 호족을 끌어안으며 북쪽으로 땅을 넓히려 했습니다. 광종은 노비안검법과 과거제로 왕권을 키웠고, 성종은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12목에 지방관을 보냈습니다.

거란이 쳐들어오자 서희는 993년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 강감찬은 1019년 귀주 대첩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여진에 맞서서는 윤관이 별무반을 만들어 동북 9성을 쌓았습니다. 1170년 무신 정변 뒤에는 최씨 정권이 오래 권력을 쥐었습니다.

몽골이 침입하자 고려는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버텼고, 이때 팔만대장경을 새겼습니다. 원 간섭기가 이어지다가 공민왕이 친원 세력을 몰아내고 쌍성총관부를 되찾았으며,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었습니다.

핵심 정리

광종의 개혁
— 광종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풀어 주는 노비안검법을 실시해 호족의 힘을 줄였습니다.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를 처음 실시해 실력 있는 관리를 뽑았습니다.
성종과 시무 28조
— 성종은 최승로가 올린 시무 28조를 받아들여 유교를 나라 운영의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전국 12목에 처음으로 지방관을 보내고 중앙 관제를 정비했습니다.
거란의 침입과 격퇴
— 1차 침입 때 서희가 외교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었고(993),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1019). 이후 고려는 천리장성을 쌓아 국경을 지켰습니다.
윤관의 별무반
— 여진의 기병에 맞서기 위해 윤관의 건의로 만든 특수 부대입니다. 별무반은 여진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았으나, 나중에 여진의 요청으로 돌려주었습니다.
무신 정권
— 1170년 무신 정변으로 무신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최고 권력 기구로 삼았고, 그 아들 최우는 정방을 두고 삼별초를 조직했습니다. 이 시기 망이·망소이, 만적 같은 하층민의 봉기가 이어졌습니다.
공민왕의 개혁
— 공민왕은 원나라 편에 선 기철 등을 없애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했으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땅을 되찾았습니다. 신돈을 등용해 전민변정도감을 두고 빼앗긴 땅과 노비를 되돌렸습니다.
고려의 문화유산
— 몽골 침입 때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팔만대장경을 새겼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입니다. 고려청자는 무늬를 파고 다른 흙을 메우는 상감 기법으로 유명합니다.

★ 시험 포인트

  • 노비안검법·과거제(광종)와 시무 28조·12목(성종)을 바꿔 놓은 선지가 자주 나옵니다.
  • 서희는 1차 침입(외교 담판), 강감찬은 3차 침입(귀주 대첩)입니다.
  • 묘청은 서경(평양)으로 도읍을 옮기자고 주장하다 난을 일으켰고, 김부식이 이를 진압했습니다.
  • 몽골에 맞선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 제주도로 옮겨 가며 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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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조선 전기

★★★★☆ 14% (추정)

개요

이 단원은 1392년 조선이 세워진 뒤 태종·세종·세조·성종이 나라의 틀을 만든 과정과, 사림이 성장하며 겪은 사화, 그리고 임진왜란·병자호란까지를 다룹니다. 왕마다 대표 업적을 구별하는 문제가 많이 나옵니다.

태종은 6조 직계제와 호패법으로 왕권을 키웠고, 세종은 집현전을 두고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며 4군 6진을 개척했습니다. 세조는 집현전을 없애고 6조 직계제를 다시 실시했으며,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하고 홍문관을 두었습니다.

성종 때부터 중앙에 들어온 사림은 훈구 세력과 부딪혀 네 차례 사화를 겪었습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갑자사화, 중종 때 조광조가 화를 입은 기묘사화, 명종 때 을사사화가 일어났습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의 수군과 곳곳의 의병이 맞서 싸웠고, 조정은 훈련도감을 만들었습니다. 인조 때는 후금(청)의 침입으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겪었고,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버티다 결국 항복했습니다.

핵심 정리

태종의 왕권 강화
— 태종은 6조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에게 바로 보고하는 6조 직계제를 실시했습니다. 16세 이상 남자에게 호패를 차게 하는 호패법을 시행하고, 신하들의 사병을 없앴습니다.
세종의 업적
— 세종은 집현전을 두어 학문을 키우고, 훈민정음을 창제(1443)·반포(1446)했습니다. 최윤덕·김종서를 보내 4군 6진을 개척했고, 측우기를 만들고 농사직설을 펴냈습니다.
세조와 성종
— 세조는 집현전을 없애고 6조 직계제를 부활했으며, 현직 관리에게만 땅을 주는 직전법을 실시했습니다. 성종은 경국대전을 완성·반포하고 홍문관을 두었으며 사림을 등용했습니다.
조광조의 개혁
— 중종 때 등용된 사림 조광조는 추천으로 인재를 뽑는 현량과를 실시하고, 공을 부풀린 공신들의 공훈을 깎는 위훈 삭제를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발한 훈구 세력 때문에 기묘사화로 물러났습니다.
임진왜란
— 1592년 일본이 쳐들어온 전쟁입니다. 이순신은 한산도 대첩 등에서 일본 수군을 무찔렀고, 김시민은 진주성에서, 권율은 행주산성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전쟁 중 조정은 훈련도감을 설치했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 인조 때 후금이 쳐들어온 것이 정묘호란이고, 나라 이름을 청으로 바꾼 뒤 다시 쳐들어온 것이 병자호란(1636)입니다. 병자호란 때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했다가 삼전도에서 항복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6조 직계제는 태종과 세조, 의정부 서사제는 세종 때입니다. 자주 뒤바꿔 나옵니다.
  • 4대 사화의 순서(무오 → 갑자 → 기묘 → 을사)와 왕을 묻는 문제가 단골입니다.
  • 훈민정음은 1443년 창제, 1446년 반포입니다. 두 해를 바꿔 놓은 선지를 조심하세요.
  •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중에 만들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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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조선 후기

★★★★★ 1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두 차례 큰 전쟁 뒤 조선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다룹니다. 붕당 정치와 탕평책, 영조와 정조의 개혁, 세금 제도의 변화, 상공업의 발달, 실학과 서민 문화, 그리고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까지 이어집니다.

숙종 때는 집권 붕당이 갑자기 바뀌는 환국이 거듭되었습니다. 이를 바로잡으려 영조는 탕평비를 세우고 균역법을 실시했으며, 정조는 규장각과 장용영을 두고 수원 화성을 쌓았습니다.

세금 제도도 바뀌었습니다. 영정법은 땅에 매기는 세금을 1결당 4~6두로 고정했고, 대동법은 특산물 대신 쌀·옷감·돈으로 내게 했으며, 균역법은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였습니다. 대동법으로 관청에 물건을 대는 공인이 생겨나 상업이 활발해졌습니다.

학문에서는 현실 문제를 고치려는 실학이 일어나 정약용은 목민심서를, 박지원은 열하일기를 썼습니다. 19세기에는 몇몇 가문이 권력을 쥔 세도 정치로 삼정이 문란해져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핵심 정리

숙종의 환국
— 숙종 때 왕이 집권 붕당을 한꺼번에 바꾸는 환국이 여러 번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서인과 남인이 번갈아 크게 화를 입었고, 상대 붕당을 아예 없애려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영조의 정책
— 영조는 탕평비를 세워 붕당을 고르게 쓰겠다고 밝혔습니다. 균역법을 실시하고, 청계천을 준설했으며, 속대전을 펴내 법전을 정리했습니다.
정조의 정책
— 정조는 규장각을 두어 인재를 기르고, 왕을 지키는 군대 장용영을 만들었습니다. 수원 화성을 쌓았고, 신해통공으로 시전 상인의 독점 판매권(금난전권)을 대부분 없앴습니다.
대동법
— 집집마다 특산물을 바치던 공납을 땅의 넓이에 따라 쌀·옷감·돈으로 내게 한 제도입니다. 광해군 때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해 점차 전국으로 넓혔고, 관청에 물건을 사서 대는 공인이 나타났습니다.
균역법
— 영조가 실시한 제도로, 군역 대신 내던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줄였습니다. 줄어든 수입은 땅 주인에게 걷는 결작 등으로 메웠습니다.
실학자
— 농업 개혁을 강조한 학자로는 반계수록의 유형원, 성호사설의 이익, 목민심서의 정약용이 있습니다. 상공업 발달을 강조한 학자로는 열하일기의 박지원, 북학의의 박제가가 있습니다.
세도 정치와 농민 봉기
— 순조·헌종·철종 때 몇몇 외척 가문이 권력을 쥐어 세금 제도(삼정)가 크게 어지러워졌습니다. 1811년 평안도 차별에 반발한 홍경래의 난, 1862년 진주에서 시작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 시험 포인트

  • 탕평비·균역법(영조)과 규장각·화성(정조)을 바꿔 놓은 선지가 가장 흔한 함정입니다.
  • 대동법은 공납, 균역법은 군역, 영정법은 전세를 고친 제도입니다.
  • 목민심서(정약용)와 열하일기(박지원)처럼 실학자와 책을 짝짓는 문제가 자주 나옵니다.
  • 임술 농민 봉기 뒤 정부는 삼정이정청을 두어 수습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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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개항기·대한제국

★★★★★ 14% (추정)

개요

이 단원은 흥선 대원군의 정치에서 시작해 나라의 문을 연 개항, 여러 개혁 운동, 대한제국의 성립,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사건이 짧은 기간에 많이 일어나므로 순서를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고 서원을 정리하며 왕권을 세웠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두었으나, 우금치에서 패했습니다. 같은 해 갑오개혁으로 신분제와 과거제가 없어졌습니다. 1896년 독립 협회가 세워졌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자 고종은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고, 일제는 이를 구실로 고종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이에 맞서 의병이 일어나고 신민회와 국채 보상 운동 같은 구국 운동이 이어졌지만, 1910년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핵심 정리

흥선 대원군의 정책
—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의 기능을 줄이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되살렸습니다.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당백전을 찍었고, 서원을 대부분 정리했으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했습니다.
강화도 조약(1876)
—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입니다. 부산 외 두 항구를 열고, 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했습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 1882년 임오군란은 차별받던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청나라의 간섭이 심해졌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일으켰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동학 농민 운동(1894)
—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선 봉기로 시작해 황토현에서 관군을 이기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은 뒤 집강소를 두어 개혁을 실천했으나, 다시 일어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독립 협회
— 1896년 서재필 등이 세운 단체로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만민 공동회를 열어 외세의 이권 침탈에 반대했고,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채택했습니다.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 1897년 고종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받아들인다는 구본신참을 내세워 광무개혁을 추진하고, 땅을 측량해 지계(토지 문서)를 발급했습니다.
국권 피탈 과정
—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났고, 이어진 한일 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었습니다. 1910년 결국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 시험 포인트

  • 강화도 조약 → 임오군란 → 갑신정변 → 동학 농민 운동 → 갑오개혁 순서를 묻는 문제가 단골입니다.
  • 신미양요(미국)와 병인양요(프랑스)의 상대 나라를 바꿔 놓은 선지를 조심하세요.
  • 서양과 맺은 첫 조약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 신민회는 안창호 등이 만든 비밀 단체로 대성학교·오산학교를 세웠습니다.
  •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은 나랏빚을 갚자는 운동입니다.
외우는 요령·비교표·대표 문제 보기 →

1-7. 일제 강점기

★★★★☆ 8% (추정)

개요

이 단원은 1910년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일제의 통치 방식과 이에 맞선 독립운동을 다룹니다. 일제의 통치는 시기에 따라 방식이 달랐고, 독립운동도 무장 투쟁·외교·실력 양성·문화 수호처럼 여러 갈래로 이어졌습니다.

1910년대 일제는 헌병 경찰을 앞세운 무단 통치를 하며 토지 조사 사업을 벌였습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일제는 1920년대에 이른바 문화 통치로 바꾸었고, 1930년대 이후에는 창씨개명 등 민족 말살 통치를 폈습니다. 3·1 운동 뒤에는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습니다.

1920년 홍범도의 봉오동 전투와 김좌진 등의 청산리 대첩에서 독립군이 크게 이겼습니다. 국내에서는 물산 장려 운동이 일어났고, 1927년 좌우가 힘을 합친 신간회가 만들어졌습니다. 1940년 임시 정부는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핵심 정리

1910년대 무단 통치
— 헌병 경찰이 일반 경찰 업무까지 맡아 사람들을 억눌렀고, 조선 태형령으로 매질을 허용했습니다. 토지 조사 사업으로 신고하지 않은 땅을 빼앗았고, 회사를 세울 때 허가를 받게 하는 회사령을 실시했습니다.
1920년대 이른바 문화 통치
— 3·1 운동 뒤 헌병 경찰을 보통 경찰로 바꾸었지만 경찰 수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일본에 쌀을 더 가져가려고 산미 증식 계획을 실시했고, 치안 유지법으로 독립운동을 탄압했습니다.
1930년대 이후 민족 말살 통치
— 일제는 전쟁을 넓히면서 국가 총동원법으로 사람과 물자를 끌어갔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게 하고, 신사 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했으며, 학교에서 우리말 교육을 없앴습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
— 3·1 운동 뒤 1919년 상하이에 세워진 정부입니다. 국내와 연락하려고 연통제와 교통국을 두었고, 독립신문을 펴냈습니다. 1940년 충칭에서 한국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
— 1920년 홍범도가 이끈 대한 독립군 등이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이겼고, 같은 해 김좌진의 북로 군정서군과 홍범도 부대 등이 청산리 일대에서 크게 이겼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일제는 간도 참변을 일으켰습니다.
의열단과 한인 애국단
— 의열단은 1919년 김원봉이 만든 단체로, 신채호가 쓴 조선 혁명 선언을 활동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한인 애국단은 김구가 만들었고, 이봉창과 윤봉길이 의거를 일으켰습니다.
신간회
— 1927년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가 함께 만든 가장 큰 항일 단체입니다.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보내 지원했습니다.

★ 시험 포인트

  • 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 산미 증식 계획은 1920년대입니다. 시기를 바꿔 놓는 선지가 자주 나옵니다.
  • 조선어 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준비하다가 일제의 탄압(조선어 학회 사건)을 받았습니다.
  • 물산 장려 운동은 조만식 등이 평양에서 시작한 국산품 애용 운동입니다.
  • 1926년 6·10 만세 운동은 순종의 장례일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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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현대

★★★☆☆ 6% (추정)

개요

이 단원은 1945년 광복부터 오늘날까지를 다룹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 전쟁, 4·19 혁명에서 6월 민주 항쟁까지 이어진 민주화, 경제 성장, 그리고 남북 관계의 변화가 중심입니다.

광복 뒤 1948년 5·10 총선거로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고,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인천 상륙 작전과 중국군 개입을 거쳐 1953년 정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에 맞선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났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 헌법으로 장기 집권을 꾀했고, 1980년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의 결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남북 관계에서는 1972년 7·4 남북 공동 성명, 1991년 남북 기본 합의서, 2000년 6·15 남북 공동 선언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정부마다 나온 합의를 구별하는 문제가 자주 출제됩니다.

핵심 정리

대한민국 정부 수립
— 1948년 5·10 총선거는 우리 역사 최초의 민주적 보통 선거로, 이를 통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제헌 국회는 헌법을 만들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뽑았으며, 8월 15일 정부 수립을 선포했습니다.
6·25 전쟁
—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인천 상륙 작전으로 서울을 되찾았으나 중국군이 개입해 1·4 후퇴를 겪었고,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4·19 혁명(1960)
— 이승만 정부의 3·15 부정 선거에 맞서 학생과 시민이 일어난 민주 혁명입니다. 이승만이 물러난 뒤 내각 책임제의 장면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박정희 정부와 유신 체제
— 5·16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는 한일 기본 조약을 맺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습니다. 1972년 유신 헌법으로 대통령을 간접 선거로 뽑게 해 장기 집권을 꾀했고, 1979년 10·26 사태로 끝났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1980)
— 12·12 사태로 권력을 잡은 신군부에 맞서 광주 시민들이 일어난 민주화 운동입니다. 계엄군의 무력 진압으로 많은 시민이 희생되었고, 관련 기록물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에 올랐습니다.
6월 민주 항쟁(1987)
—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전두환 정부의 4·13 호헌 조치에 맞서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친 전국적 시위입니다. 그 결과 6·29 선언이 나오고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습니다.

★ 시험 포인트

  • 7·4 남북 공동 성명은 박정희, 남북 기본 합의서는 노태우, 6·15 남북 공동 선언은 김대중 정부 때입니다.
  • 4·19 혁명은 이승만 정부를, 6월 민주 항쟁은 전두환 정부를 상대로 일어났습니다.
  • 제주 4·3 사건과 남북 협상(김구·김규식)은 정부 수립 전인 1948년의 일입니다.
  • 금융 실명제는 김영삼 정부, 외환 위기 극복은 김대중 정부와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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