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 한국사 과목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개항기·대한제국 개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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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새로 쓴 글 가운데, 작성과 분리된 AI 검증(다시 읽고 사실·수치 확인)을 통과한 단원만 싣습니다. 틀린 곳을 발견하면 알려 주세요.
개요
이 단원은 흥선 대원군의 정치에서 시작해 나라의 문을 연 개항, 여러 개혁 운동, 대한제국의 성립, 그리고 나라를 빼앗기기까지의 과정을 다룹니다. 사건이 짧은 기간에 많이 일어나므로 순서를 정확히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흥선 대원군은 경복궁을 다시 짓고 서원을 정리하며 왕권을 세웠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척화비를 세웠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개항한 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났습니다.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 전주성을 점령하고 집강소를 두었으나, 우금치에서 패했습니다. 같은 해 갑오개혁으로 신분제와 과거제가 없어졌습니다. 1896년 독립 협회가 세워졌고,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광무개혁을 추진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자 고종은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고, 일제는 이를 구실로 고종을 물러나게 했습니다. 이에 맞서 의병이 일어나고 신민회와 국채 보상 운동 같은 구국 운동이 이어졌지만, 1910년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핵심 개념
흥선 대원군의 정책
흥선 대원군은 비변사의 기능을 줄이고 의정부와 삼군부를 되살렸습니다.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당백전을 찍었고, 서원을 대부분 정리했으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했습니다.
외우는 요령'경복궁·당백전·서원 정리·호포제' 넷을 묶어 외우세요.
강화도 조약(1876)
운요호 사건을 계기로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입니다. 부산 외 두 항구를 열고, 일본에 해안 측량권과 영사 재판권(치외 법권)을 인정했습니다.
외우는 요령'최초 + 불평등 = 강화도 조약'으로 기억하세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1882년 임오군란은 차별받던 구식 군인들이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청나라의 간섭이 심해졌습니다. 1884년 갑신정변은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틈타 일으켰으나 청군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했습니다.
외우는 요령'임오 = 구식 군인(1882), 갑신 = 김옥균·우정총국(1884)'으로 나누세요.
동학 농민 운동(1894)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맞선 봉기로 시작해 황토현에서 관군을 이기고 전주성을 점령했습니다. 정부와 전주 화약을 맺은 뒤 집강소를 두어 개혁을 실천했으나, 다시 일어나 우금치 전투에서 패했습니다.
외우는 요령'고부 → 황토현 → 전주 → 집강소 → 우금치' 순서를 길처럼 외우세요.
독립 협회
1896년 서재필 등이 세운 단체로 독립신문을 펴내고 독립문을 세웠습니다. 만민 공동회를 열어 외세의 이권 침탈에 반대했고, 관민 공동회에서 헌의 6조를 채택했습니다.
외우는 요령'독립 협회 = 독립신문·독립문·만민 공동회'로 '독립'을 세 번 떠올리세요.
대한제국과 광무개혁
1897년 고종은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 자리에 올랐습니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것을 받아들인다는 구본신참을 내세워 광무개혁을 추진하고, 땅을 측량해 지계(토지 문서)를 발급했습니다.
외우는 요령'대한제국 = 광무 = 구본신참 = 지계'로 연결하세요.
국권 피탈 과정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되었습니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구실로 고종이 강제로 물러났고, 이어진 한일 신협약으로 군대가 해산되었습니다. 1910년 결국 국권을 빼앗겼습니다.
외우는 요령'외교권(1905) → 군대(1907) → 나라 전체(1910)' 순서로 빼앗겼다고 기억하세요.
자주 나오는 포인트
- 강화도 조약 → 임오군란 → 갑신정변 → 동학 농민 운동 → 갑오개혁 순서를 묻는 문제가 단골입니다.
- 신미양요(미국)와 병인양요(프랑스)의 상대 나라를 바꿔 놓은 선지를 조심하세요.
- 서양과 맺은 첫 조약은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입니다.
- 신민회는 안창호 등이 만든 비밀 단체로 대성학교·오산학교를 세웠습니다.
-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 보상 운동은 나랏빚을 갚자는 운동입니다.
헷갈리는 것 비교: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 구분 | 병인양요(1866) | 신미양요(1871) |
|---|---|---|
| 상대 나라 | 프랑스 | 미국 |
| 계기 | 천주교 신자 처형(병인박해) | 제너럴셔먼호 사건 |
| 활약 인물 | 양헌수(정족산성) | 어재연(광성보) |
| 결과·영향 |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김 | 척화비를 세움 |
대표 문제 3개
검수를 마친 예상문제 가운데 이 단원의 대표 문제입니다.
문제 1. 고종의 아버지로서 실권을 잡고 경복궁을 다시 지었으며, 서원을 크게 정리하고,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한 인물은?
- ① 흥선 대원군
- ② 박규수
- ③ 김홍집
- ④ 최익현
- ⑤ 김옥균
▼ 정답과 해설 보기▲ 정답과 해설 접기
정답: ① 흥선 대원군
핵심: 경복궁 중건·서원 정리·호포제 = 흥선 대원군
흥선 대원군은 1863년 고종이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실권을 잡았습니다.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고 경복궁을 중건하고, 붕당의 근거지가 된 서원을 47곳만 남기고 정리했으며,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실시했습니다.
틀린 선지
- 박규수: 통상 개화론을 주장해 개화파 인물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 김홍집: 갑오개혁을 이끈 총리대신입니다.
- 최익현: 흥선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고, 을사늑약 뒤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 김옥균: 급진 개화파로,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습니다.
문제 2.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으로, 양헌수 부대가 정족산성에서 맞서 싸웠고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긴 사건은?
- ① 제너럴셔먼호 사건
- ② 오페르트 도굴 사건
- ③ 신미양요
- ④ 병인양요
- ⑤ 운요호 사건
▼ 정답과 해설 보기▲ 정답과 해설 접기
정답: ④ 병인양요
핵심: 프랑스·정족산성·외규장각 도서 = 병인양요(1866)
1866년 천주교 탄압(병인박해)으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형되자,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습니다. 이것이 병인양요입니다. 한성근 부대(문수산성)와 양헌수 부대(정족산성)가 맞서 싸웠고, 프랑스군은 물러가면서 외규장각 도서를 빼앗아 갔습니다.
틀린 선지
- 제너럴셔먼호 사건: 1866년 미국 상선이 평양 대동강에서 통상을 요구하다 불탄 사건입니다.
-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년 독일인 오페르트가 흥선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입니다.
- 신미양요: 1871년 미국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으로, 어재연 부대가 광성보에서 싸웠습니다.
- 운요호 사건: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가 강화도에 접근해 충돌한 사건입니다.
문제 3. 1876년 일본과 맺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으로, 부산 등 세 항구를 열고 일본인의 치외 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은?
- ①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② 한성 조약
- ③ 제물포 조약
- ④ 을사늑약
- ⑤ 강화도 조약
▼ 정답과 해설 보기▲ 정답과 해설 접기
정답: ⑤ 강화도 조약
핵심: 1876년 강화도 조약 = 최초 근대 조약·불평등 조약
운요호 사건을 구실로 일본이 개항을 요구해 1876년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을 맺었습니다. 부산과 원산·인천 세 항구를 열고, 일본인이 조선에서 죄를 지어도 일본 법으로 재판받는 치외 법권을 인정한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틀린 선지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1882년 미국과 맺은 조약으로, 서양 나라와 맺은 첫 조약입니다.
- 한성 조약: 갑신정변 뒤 1884년 일본과 맺은 조약입니다.
- 제물포 조약: 임오군란 뒤 1882년 일본과 맺은 조약으로, 일본 공사관에 경비병을 두게 했습니다.
- 을사늑약: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조약입니다.